초록

일에 쫓기며 살아온 지 어느덧 10여 년. 스무 살 때 가졌던 꿈들도 서른을 넘기면서 허무하게만 느껴지고, 그런 일상에 지쳐버린 그래픽디자이너 이리에 사토루코는 희망 없는 자신의 모습에 자조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의 유품 중에서 요절한 천재 시인 사무카와 겐지의 일기를 발견했다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는다.
유품을 시인의 유족에게 되돌려주기 위해 시인의 손자인 사무카와 고스케를 만난 이리에는 냉담하고 무뚝뚝한 그에게 거리감을 느끼지만, 자신도 모르게 끌리는 감정을 갖는다. 악기 장인인 사무카와 고스케도 자신을 바라보는 사토루코의 모습을 천천히 마주한다.
그들의 관계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 이야기가 밝혀지며 함께 진행된다. 에드거 앨런 포의 시를 사랑했던 천재 시인 사무카와 겐지는 전쟁이라는 역사를 통해 사랑했던 여인 ‘구니’와 가슴 아픈 이별을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길지 않았던 뜨거운 사랑, 그리고 감당하기 어려운 인생의 드라마가 복잡하게 어울러들며 사토루코와 고스케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공명한다. 저주처럼 이어진 과거와 현재의 사랑이 ‘붉은 수금’의 선율에 섞여 차디찬 붉은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붉은 수금』은 텍스트만이 나열된 책임에도 쓰하라 야스미가 펼치는 환상적인 묘사력으로 시종일관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특히 오가와 요코(『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작가)는 『붉은 수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붉은 수금이 연주하는 노래는 죽은 이들의 이야기. 그 울림은 병약한 사람들을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사랑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 소설은 연애소설이면서도 일에 치이고 삶에 지쳐 자신의 행복을 잊고 사는 여성들을 위한 위로 소설이기도 하다. 더 이상 젊지 않고 꿈마저 퇴색되어 의기소침해진 여인들에게 작가는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일은 행복을 위한 수단일 뿐이라며 소곤소곤 속삭인다. - 출판사 리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