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난생처음 제 명의의 집을 갖게 되어 감개무량한 번역가 민석은 아주 매력적인 외모의 소유자다. 그런데 첫날부터 삐꺽거리기 시작하는 아파트 생활. 비밀번호를 알아야 들어가든가 말든가 할 것 아닌가? 며칠간 장례식장에 묶여 있던 민석 대신 여자 친구 지나가 알아서 포장 이사를 완료했던 것. 설상가상으로 지나의 휴대폰은 꺼져 있다. 305호 여자가 출현할 순간이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목소리 출현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왜냐하면 이 모든 대화는 305호 현관문 옆에 부착된 인터폰 스피커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 여자는 지나가 전해 달라고 부탁한 비밀번호를 알려 주는 대신, 자신에게 닉네임을 하나 지어 달라고 말한다. 피곤이 극에 달해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민석은 아무거나 툭 내뱉는다. “앨리스.” 여자 또한 민석에게 루이스란 닉네임을 지어 준다.
그러나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하루 이틀로 끝날 생각이 아닌가 보다. 우람한 몸집의 위층 여자 코끼리에 따르면, 305호 앨리스는 10년 동안 문밖으로 단 한 발짝도 나온 적이 없단다. 시도 때도 없이 심부름을 시키고 말을 안 들어주면 쇠 파이프로 민석의 집 문을 찍어 대기까지 하는 엽기녀 앨리스. 모든 것이 점차 꼬여만 가고, 급기야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 된 민석.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정말 너무나 이상하게도, 이 이상한 관계가 지속될수록 앨리스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점점 짙어진다는 것이다. 앨리스의 이름은? 나이는? 외모는?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녀가 주문한 택배를 대신 받아서 약간 크게 개조된 305호의 우편 투입구에 하나둘씩 넣어 주며 호기심은 서서히 호감으로 발전해 간다. 이제 오직 민석의 상상으로 만들어 내는 그녀, 앨리스가 존재할 뿐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또 하나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누구보다 빛나는 미모와 무엇이든 시작하기만 하면 최고가 되는 능력을 지닌 완벽한 여자가 있다. 치과 의사인 P와 조각가인 K는 사진작가인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내기를 벌인다. 페어플레이 원칙에 입각하여 셋이서 함께 더블데이트를 즐기다가 최종 결정은 1년 후 여자가 내린다는 것. 하지만 정작 여자는 두 남자 중 하나가 아닌 다른 사람을 선택하고, 두 남자는 여자에게 복수를 맹세한다. 비극의 시작인 셈이다. 그들이 아닌 다른 사람, 즉 자기 자신을 선택한 대가치고는 너무 큰 대가를 치르고 만 여자. 그녀는 끔찍한 비극을 가져온 원인을 감금하기에 이른다. 바로 자기 자신을 감금하고 철저하게 변신함으로써 그녀 또한 세상에 복수하겠노라 결심을 하는데……. - 출처 : Yes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