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채굴장으로』는 지도 남쪽에 있는 외딴섬을 무대로 한 연애 소설이다. 그것도 남편이 있으면서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유부녀가 주인공인 연애 소설. 이쯤 되면 어느 정도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통속적인 사건이 있을 법한데 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보다는 남편을 사랑하지만, 다른 남자에게 자꾸 시선이 가고 마음이 끌리는 것을 한없이 억제하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소설의 주를 이룬다. 물론 이렇게 소극적인 주인공과는 대조적으로 유부남과 연애하는 걸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니는 동료 교사 쓰키에도 있고, 아흔이 넘은 나이에 음몽(淫夢)을 꾸며 신음하는 시즈카 할머니도 있긴 하지만, 그녀들의 이야기조차 선정적이라기보다는 애틋하고 어딘지 마음을 울리는 구석이 있다.

책의 제목에 쓰인 ‘채굴장(切羽)’은 본래 갱도의 맨 끝을 가리키는 말로, 그 이상 앞으로는 나아갈 수 없는 장소를 뜻한다. 그러니 ‘채굴장으로’라는 제목을 액면 그대로만 해석하자면 뭔가 ‘막장’으로 치닫는 드라마를 예고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일본어 切羽에는 (한 자씩 풀어보면) ‘날개를 자르다’라는 의미 또한 담겨 있다. 다시 말해, 어쩔 수 없는 사랑의 끌림과 그것을 접는 마음의 애절함을 동시에 담고 있는 제목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현지에서 이 작품이 출간되었을 때, 자극적인 소재를 내세우지 않고 연애 소설의 백미를 보여준다는 평가와 함께 가장 많이 이야기되었던 것이 담담한 작품 분위기와는 별개로 ‘에로틱하고 관능적인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사랑은, 그 사랑의 행위가 아니라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 그 자체로 충분히 관능적이다.” 라고 답한 바 있는데, 이것이 제목이 시사하는 바를 가장 잘 대변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결말이 그 사랑의 치열함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비난하는 사랑에 몸을 던지던 혼자 가슴에 담아두던, 사랑의 그 절절한 마음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 결말이 어떻게 되던 간에 그 순간만은 언제나 절박한 채굴장에 선 마음, 그것이 이노우에 아레노가 말하는 모든 사랑의 현장이고, 그것을 최대한 치밀하고 섬세하게 그려내고자 했던 노력이 비로소 결실을 맺은 작품이 바로 이 『채굴장으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